리기테다의 재발견

시인, 수필가 변 광 옥 


그 어느 해 보다 폭염과 폭우가 심했던 여름이다. 전국 곳곳에서 폭우가 무섭게 쏟아지던 8월에 리기테다소나무(Pinus rigitaeda)의 생장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점점 어려워 질 것 같은 절박감이 마음을 재촉했다. 리기테다소나무는 1950년대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와 테다소나무(Pinus taeda)를 교잡하여 만든 교잡종 소나무로 임목육종연구의 꽃을 피웠던 성공사례중의 한 수종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격고 난 우리의 산야는 헐벗고 황폐하기 이를 대 없었다. 이렇게 황폐된 산야를 복구하기 위해 고 현신규 박사께서는 척박한 토양에 잘 자라고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한 리기다소나무와 형질과 재질은 우수하나 추위에 약한 테다소나무를 교잡하여 이들 수종의 특성을 살린 형질과 재질이 우수하고 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리기테다소나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육성된 리기테다소나무는 전국 각 지역에 자랄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조림이 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 1987년까지 약 33천 ha가 심겨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많은 지역에서 벌기령에 이른 나무들은 벌채되어 다른 수종으로 갱신 조림되고 남아있는 조림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조림지마저 벌채되어 사라진다면 60여 년 전 우리가 개발한 우수한 수종이 연구자들의 평가도 받아보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 것 같아 몇몇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나섰다. 전국에 조림한 지역을 조사하여 현재 남아 있는 임분을 확인한 결과 전남북, 충남북, 경기도, 강원도 지역에 20여 개소의 지역이 조사대상지로 결정되었다. 대략 식재연도는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심겨진 나무들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산림과학원 경영부에 근무했던 K박사와 L박사가 함께하게 되었다. 나무의 생장관계를 조사하는 팀이기 때문에 특별히 섭외한 연구자들이다. 전남북부터 강원지역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안내할 각 도 산림환경연구소 직원들과 협의하여, 무더운 삼복더위지만 과제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해 출장계획이 수립되었다. 첫 조사지역은 전북 산림환경연구소 관활 지역인 전북 소양지역의 임분이다. 안내하는 후배 직원들에게 업무에 피해가 안가도록 배려하기 위해 조사임지만 확인해 주고 귀소 하도록 했다. 전북지역의 조사임지를 확인하고 나니 늦은 오후시간이 되었다. 한 지역이라도 조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끝내려고 했으나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호우로 조사가 불가능해져 전남지역으로 이동해 숙소에 들었다. 다행히 전남지역은 비가오지 않아 전남환경연구소의 안내를 받으며 조사지역 임분 확인에 나섰다. 전남 지역은 1980년 이후에 심은 지역이 없어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심은 3지역의 임분을 확인하고, 광주시 동구 장운동 무등산자락에 심겨진 임분을 조사하게 되었다. 참나무류와 혼효되어 있는 임분이었다. 리기테다소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들어 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 지르고 말았다. ‘이렇게 클 수가!’를 몇 번이나 되뇌며 나무 밑까지 접근해 갔다. 가슴높이의 나무둘레를 측정해 보니 직경이 70cm가 넘었고, 수고는 37m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많은 수종을 조사하고 우수한 나무을 선발해 보았지만 약 70년생 되는 나무가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임분 전체를 둘러보니 리기테다소나무의 수고가 다른 수종들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원산지인 미국 동남부지역에서 자라는 애비나무인 테다소나무(Pinus taeda)의 형질을 이어받은 것 같다. 테다소나무가 원산지에서 수고가 50m까지 자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하게 자란 리기테다소나무를 본 탓일까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했다. 이렇게 잘 자라는 지역이 위도상으로 어디까지 이를까하는 기대감이 나를 흥분케 했다. 전남지역의 다른 두 곳의 임지도 모두 잘 자라고 있어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끼기는 하루였다. 비가 와서 못한 전북 소양면에 있는 임지를 다시 찾았다. 1959, 1960, 1961, 조림지는 식재년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장이 좋았다. 나머지 한 임분은 ’81년 식재한 곳이다. 이곳은 멀리서 안내자가 도면을 보고 알려 준 지역이라 우리 조사단이 지적도를 보며 찾아가야 했다. L박사가 항공지도를 전공한 덕분에 찾아가는데 어렵지는 않았지만 산 능선을 두 개나 넘어 조사지역에 이르렀다. 힘들기는 했지만 조사지를 찾은 만족감에 쾌재를 불렀다.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저녁시간, 삼겹살에 소주한잔을 하며 하루의 결과를 논하며 피로를 풀었다. 충청남북도 지역도 생장이 우수하였다. 특히 대전시 계산동 산1-1림에 있는 1964년 식재한 약 6ha의 임지는 명품 숲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어 리기테다소나무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임분이기도 했다. 충북 월오동 산 47-1림에 1964, 1966, 1967년에 심겨진 나무들도 년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균일한 생장을 하고 있었다. 


리기테다소나무의 내한력을 높이기위해 테다소나무 원산지인 미국 동부지역의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꽃가루를 채집해 교배한 때문일까 잡종 리기테다소나무는 경기 강원지역에서도 생장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지역에서는 화성시 반월면 속달리에 많은 면적이 식재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조림대장이 없어 조사지역 임분의 수령을 확인하기 위해 생장추로 연륜 코아를 채취하여 확인한 결과 모든 임지가 치산녹화 1차년도에 심겨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식재당시 리기다소나무를 비교수종으로 함께 심어 리기다소나무도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원지역이 남아있어 이지역의 생장이 어떨까하는 궁금증을 갖고 임지를 찾아갔다. 춘천시 서면 서상리 산 147-1림에 있는 1959년 식재지를 찾았다. 계곡을 따라 10km이상 들어가는 임지였다. 이곳도 생장이 좋다는 선배님들의 말은 들었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상상외로 좋은 생장을 하고 있었다. 임분 전체를 돌아보고 표준이 되는 지역에서 조사구를 선정하고 생육상항을 조사하였다. 대략적인 임분 상태를 보아도 남쪽지방의 조림지보다 생장이 뒤떨어지지 않음을 느꼈다. 내한성문제로 생장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강원지역에서는 이지역외에 강릉 정동진리 산 103-1림에 있는 1991년 식재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이 조림지는 국유지에 심겨진 임지로 강릉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 임지는 채종원산 종자로 양묘된 리기테다소나무라고 추정되었고, 생장도 양호한 임분이었다. 앞으로 생장상황을 계속 관찰하여 채종원산 종자에 의한 종묘공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전시림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리기테다소나무 재조명을 위해 15일 동안 전국을 돌며 생장상황을 확인하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필자는 뉴질랜드의 라디아타소나무 육성임업 현장을 견학한 적이있다. 이번 현장조사를 통해 뉴질랜드에서 실행하고 있는 라디아타소나무 육성임업을 벤치마킹해 우리나라에서도 리기테다소나무를 육성임업의 한 수종으로 활용하면 가능할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임업통계에 따르면 사방수종으로 심었던 리기다소나무 조림면적이 아직까지도 전국에 24만 ha나 남아있다. 용재로서 가치가 적은 리기다소나무 임지를 벌채하고 리기테다소나무로 대체할 경우 우리나라 산림자원 확보에 크게 기여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